오랑캐꽃 무심히 자줏빛깔 범람할 때
어느 촌말 강생이 털 반지르르 등을 휠 때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거
제법 반가워도 웃지 않았어
무엇을 위해? 묵은 보리 깔깔하게 씹으면서
재를 넘어갈 적에 철없이 설게 핀 미친 백작약
나 닮아서 되려 울었던 거야
따땃-하지, 그래 뿌리도 알고 싹 틔우는 거요 아프면서
안다는 건 시름 앓음 참꽃 씹는 그 신 맛
혹은 그대 말따나 하릴없는 해름
세상이 미워도 절기는 좋던가 허방진 가슴 쥐고
나도 그대 보았어
모르는 척 황급히, 그러나 울며
지나던 낯익은 사내의 등
가시리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고
노래하였지 백작약 제철 뽐낼 때까지
끝끝내 나 봄에는 웃지 않았던 거야
저만치 그대따라 가버린 아지랑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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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햇살이 다정해서, 벌써 봄이 온 것 같아요 :D
까짓 것 봄 왔다고,
이제 너처럼 차가운 사람은 기억조차 할 일 없다면서
얄팍한 마음새 옷매무새로 산책하다 고뿔에 걸려버렸어.
억울해서, 부들부들 살 떨며, 바득바득 이 갈며 눈물 꾹 참는 중에
네가 왔었지.
그 몽롱한 약 기운 속에는 틀림없이 네가 있었는데,
깨어보니 젖은 속옷의 불쾌한 느낌과 혼자 있는 방의 그 괴괴함.
아아, 나는 이제 감각 따위는 믿지 않을 테야.
물도 없이 아스피린 한 알씩 씹으니까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나서,
킥킥대며 웃다가 목에 걸려 캑캑대다가
갑자기 무섭고 우울해졌어.
정말로 성냥 하나에 켜지던 환상처럼
'너'에 관련된 기억들이 환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라.
이건 어쩌면 그런 동화일지도 몰라.
혼자 수 십 알의 약을 씹어 먹고 마침내 얼어 죽는-
그것도 이 봄의 문턱에서 얼어 죽는 그런 얼어 죽을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는 사실 성냥 곽에 아편을 넣어서 파는
소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성냥보다는 설득력이 있잖아.)
조금만 지나면 그때처럼 벚꽃이 눈처럼 날리겠다.
아니, 아니. 눈이 벚꽃처럼 날렸었나?
상관 없어.
네가 실재했든지, 아니면 내가 오랫동안 꾼 꿈에 불과했든지,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팔았거나, 아편을 팔았거나.
이건 확실히 그런 동화인 거야.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
아프니까.
나는 지금부터 아파 죽을 거니까.
1.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잠 못 들게 두근거려서
열 번, 스무 번 써보면 담담해질까 백지 먹지 되도록 쓰다가
펜 끝으로 종이를 짓이기던 그 밤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치한 시를 쓰게 하고, 아침이면 황망히 찢어버리게 하던
그 심장은 이제 다른 것으로 바뀌어버린 걸까?
애끓다 증발해버렸나, 가벼워 휘발해버렸나.
2.
고등학교 문예부에서는 사랑시만 써댔고,
록 음악만이 귀에 걸렸지. 그 간극은 무엇이었을까?
양호실에 간다는 핑계로 수업을 빠지고 몰래 숨어든
강당의 두껍고 검은 커튼 그림자 뒤에서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시린 발끝을 넣어보며
혼자 울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그때도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던 걸까?
3.
스물한 살에 그 사람을 알고 몇 년,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사랑하고 있지 않은 적이 없었고
그건 또 오랫동안 비밀이 되었지.
그 기억이 그 몇 년을 살게 했었나.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비웃을 수 없게 되었고, 불가능할수록
절절할수록 진짜 사랑에 가까운 거라고 생각했지.
데모를 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대자보를 썼고, 노래를 불러댔지.
한 몸이 심장 같았고, 조금만 아파도 심장병이 걸린 것 같았고,
기침이 심해도 담배는 끊을 수가 없었지.
4.
이젠, 조금도 두근거리지 않아 미안해.
당신이 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를 읽고도 죽지 못해 미안해.
‘외로우니까 사람’이지만 외로울 때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이
당신이 아니어서 미안해.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을 이젠 눈빛만 봐도 알 것 같아서,
미간을 찡그린 애니스보다 산만하고 기민한 눈동자의 잭이
먼저 죽을 것을 영화 시작부터 눈치채버려서 미안해.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데, 나는 나보다 사랑을 사랑해서,
당신보다 기억을 더 사랑해서,
사랑은 영원히 가질 수는 없는 거란 걸 알게 돼서,
이미 너무 많은 것들에 애정을 주어버려서,
그래서 죽지 못해 미안해.
5.
사랑 때문에 죽지도 못하는 우리들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 용법이 다릅니다.
모를 리 없겠지만, 습관적으로 틀릴 수도 있죠.
압니다. 그러니 내게 설명하려 애쓰지 말아요.
난 언어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조사 한 음절로도 의미가 바뀔 수 있는 가벼움,
책장 넘기는 바람에도 날려버리는 쭉정이는
허기진 마음에 한 톨의 밥알도 되어주지 못합니다.
심지어 당신이 틀리게 사용한 그 단어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그저 실수였던 건지는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우린 너무 다른 것 같다, 는 진부하고
당연한 말은 ‘그래서?’라는 답으로 이어지고
‘관두자’로 끝을 맺지요.
후-
그 한숨이 더 솔직한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그 한숨에도 빈껍데기 말들은 흩어져버립니다.
우린 너무 다르지요. 그 말로 무엇을 설명하겠다는 겁니까?
그러지 마요. 내가 견딜 수 있게는 해줘야지요.
이렇게 되기까지도 많은 말들이 우리를 겉돌았습니다.
그건 무엇보다도 확실한 징후였지만,
눈치 채지 못했던 사람 또한 내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내내 당신이 좀더 정확하게 말해주길 바랐습니다.
하긴 같은 말도 당신을 통하면 전혀 다른 것이 되겠지요.
내가 더 미련이 많은 것 같지만 견딜 수가 없으니
차라리 먼저 말해주겠습니다.
우린 틀렸습니다.
이게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린 서로에게 답이 없단 말입니다.
어쩌자고 그런 눈빛하고
게 섰냐 가라
어째 내 命이 네 것 같아
여태 내치지 못했다
울 데 없어 먼 데 가서 울고 오는
너 사내야 품 없는 병신아
그 심장 몇 근이냐 발목까지 처졌네
설움으로 부었더냐
간이냐 쓸개냐 핏줄의 뭉침이냐
목쉬었다 훠이 쫓아낼
힘없다 아가야 사내야
꺼지기 전 별의 명멸아 네 눈
먼 데 옮기고 먼 데 울고
둘러 둘러 먼 데 가라
오지마라
다시
보세요
노란 산 은행잎으로 사태지네요
수만의 이파리
진자리마다 상처
지는 이파리마다
마지막이네요
아프세요
이 겨울 첫 비 내리고
진창의 바닥
빠져버린 발 건져내지 못하겠네요
어쩐지 꼭
남의 마음자리 밟은 것 같아
당신은 때로 소리죽여 울고
그렇지만
걸어가세요
노란걸음 농한 잎물드네요
수만의 걸음
그 자국마다 상처
그 상처마다 노란 이파리 붙여
호 불어준다면
그렇다면
보세요 겨울이네요
아프지만 걸어가세요
노란 이파리 따다 들고
서 있겠네요
마치 은행나무처럼 나,
당신의 상처를
가리겠네요
삽화용(수채용지에 수채, 수채색연필, 펜/ 효과는 포토샵)
나는 흔들리며 피는 꽃이야
그대 보아주지 않아도
여린 꽃대 힘겹게 피어올리는
섧고 섧은 꽃이야
종이에 포스터칼라
웃기지 마. 그런 게 사랑이라면 나도 해봤어.
지금도 그 사람 생각하면 소낙비 지고,
은빛 추억 마음 거스르고 올라와 눈물을 산란하지.
상사병? 아픈 거?
수많은 밤 나 혼자
손바닥 손톱으로 꾹꾹 누르고, 이 부득부득 갈면서 나도 참아봤어.
처음 마주친 날부터 시작된 신열은 이제,
내 체온 마냥 익숙하다고.
그 사람의 생일 전날,
허술한 주머니 쩔그렁 몇 푼 동전소리에 마음 무너지고
낯선 동네 전신주에 기대어 피우던 담배연기
폐 속 깊이 깊이 쌓이던 날들.
다만 그런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따위 것, 나도 해봤어.
태풍 끝물 가는비 소심하던 밤에 너는
보잘것없는 맥주 몇 잔 술기운에 의지해 말했어.
그 사랑은 시작도 못 해봤으니, 끝도 없다고.
죽고싶다고, 또는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라도 완결을 짓고 싶다고.
그러나 어린 마음아,
그것은 사랑이 아니야.
사랑은 끝을 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
'사랑해'라는 말과 가장 닮은 말은, '살아야 해' 임을 알아야 할거야.
그 사람이 살아주길 세상 무엇보다 바라고,
아픔을 팔아서라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켜보는 일.
사실은 바로 그것이 네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이란다.
어리석어 연민만 갖게 하는
내 아직 어린 마음아.
수채, 포토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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