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옵니다. 나의 영웅들.
무대를 보지 못했다면, 절대 나의 이 팬심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오오오.
이명백한 독재정권(이제 이 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정말로)은
잘못 알아도 정말 제대로 잘못 알고 있다.
민주주의를 끌어내리려고 할수록 민주주의는 끓어오른다.
어쩌면 이전의 이, 박, 전 보다 더 민주주의에 기여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뿌리부터 약해 늘 흔들리며 꽃대 밀어 올리던
이 땅의 민주주의는 그리하여 절대 꺾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절대 뿌리 뽑히진 않았다.
척박한 땅 깊이 잔뿌리 뻗어 마른 흙일지라도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
언제나 마지막엔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유순해서 우습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그 역사를 살아왔다. 배웠다.
푼돈 돌리는 생업에 바빠서
세상 돌아가는 꼴 어지러운 줄 모르던
부모님들도 이제, 이건 아니라고 외친다.
오늘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더 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이긴다.
기운을 낸다는 것
피곤과 우울, 상념들에 맞서
뜨거운 밥 한술 입 안에 밀어 넣는
어쩌면 전투 같은 일
모진 세상에 입맛 씁쓸해져 올 때에
주린 배로 이 악물기 보다는
푸진 밥 꼭꼭 씹어 달게 삼키는 일
그 기운으로 다시 사랑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 지키는 일
먹는다는 것은 언제나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
내 손으로 뽑은 두 번째 대통령이었다.
민노당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투표소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고민해야했고
결국 나의 한 표를 얻은 건 그였다. 기표를 하던 그 촉감, 아직 기억한다.
그는 내게 큰 대안이었다.
한때는 세상 모든 ‘게 다 노무현 때문’이었다.
한글을 막 깨치고 인터넷을 갓 시작한 어린애들도
노무현 탓을 했다.
사실 모든 게 그의 탓일 만큼이나 그의 존재는 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음이 ‘노무현 덕분’인 줄 알고
감사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었기에 그를 비난했다.
파병을 결정했을 때 미친 듯이 화가 났고,
대추리를 바라보며 악다구니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일을 할 때에 고개를 끄덕였고
탄핵을 찬성한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 갈 때엔 내 마음도 뻐근했고,
가족들의 비리가 불거졌을 때 모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그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를 좋아했던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는 노무현 정권기를 살아왔다.
그는 이전 보다 진보한 정치로
민주주의 한국 대통령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존경 받을만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었다.
전 대통령으로 존중받아 마땅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잊지 않는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 배너에 사용된 고인의 성명은 네이버 이미지에서 빌려온 친필 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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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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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한 글도 잠시 내려둡니다. 다만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어느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먹고 있다가 문득 착신 금지시킨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고 있을
|
본인이 얼마 전 변경한 파비콘은 오르페오님의 포스팅으로부터 퍼 온 것이다. 귀엽다는 반응을 기대했는데 지금까지 반응은 단 하나, 모 옹께서 토끼같다며 아주 잘 어울린다 하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손깃만 스쳐도 사정이더라... 이 글은 블로거뉴스 반려동물 카테고리로 발행되었다 |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말이죠. -ㅅ-
오늘 제 컴퓨터 뮤직플레이어에 걸린 곡목입니다.
'앗, 요거!' 하고 느낌 오는 곡이 있으시면
찾아서 함께 들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雨 / 장혜진
비오는 거리 / 이승훈
오래된 기억 / 이은미
블루레인 / 핑클
초코캣 / 이바디
Nothing Better / 정엽
물이 되는 꿈 / 루시드폴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 / 신승훈
Round&Round / Neil Young
바람 [굿바이 솔로 OST] / Adam's Apple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장혜진
치유 / Nell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 유미
섬집아기 / Richard Yongjae O'Neill
I'm a fool to want you / Billie Holiday
당신은 참 / 성시경
Letter from you / Maximilian Hecker
그대를 만나기 전에 / 노래마을
When I fall in love /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Chocolate Legs / Eric Benet
1000years / 장혜진
거기서 창세기적 남녀의 전형을 발견하긴 어렵지 않다.
이름도 대놓고 '이브'인 바이러스, 이미 부끄러움 타지 않는 -욕망의 금지가 없는 여자,
아담의 신체(혈액)로 탄생하는 새로운 여자, 금기를 깨트린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는 남자.
이브의 이미지는 여러 창작물 속 팜프파탈의 모티프가 되어 왔다.
그러니 새롭지 않고 진부하고 고루한 이미지의 차용이라고 비판한다면,
그 여지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거 맞다'라고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해 '그렇구나, 그럼 욕먹어라'라고 하는 비평은
참 어처구니 없고 어처구니 없다.
작품 자체를 해체하고 분석하고 어떤 이해를 만드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다음 글은 반대로
비평가 자신이 필요한 이해에 맞추어 영화를 해체하고
'입맛대로 까기'에 불과한 창칼을 들이댄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3728
사실 극중 인물 상현은 처음부터 찌질하다.
그는 스스로 금기시한 것을 깨는 데에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어떤 선택을 한다. (아, 스포일러의 두려움이여! -ㅅ-)
거기서 또 의도하지 않게 'HIV'를 얻게된 후, 역시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단
변명을 하며 끊임없이 금기를 깨어 나간다.
또다른 갈망의 상태에 있던 여자와의 만남은 금기의 해제에 속도를 더하는
어떤 촉매였을 뿐, 그의 '찌질함'은 일관성을 가진다.
맞다. 상현은 여자 탓을 한다. 여자를 욕망하기 때문에 큰 금기를 깨고도
몰랐다고 발뺌하며 자신에 대한 죄의식을 여자에게 전가한다.
그렇지만 그게 감독이 여자 탓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이 영화에서 굳이 남녀 성대결의 구도를 만들고 싶다면 (그러고 싶을까?)
오히려 죄다 남자 탓이라고 말하는 영화라고 씹어댈 수도 있다.
서로의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이용하고 갈망하는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서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끌어내는 그 사고능력이 참 대단해 보인다.
이러한 비평의 행태에 대해서는 좋은 글이 있어서 링크로 갈음한다.
(3번 마루타 비평에 주목할 것.)
이런 슬프기 짝이 없는 비평의 폐해는 그 비평가 뿐만이 아니라
그 글을 실은 매체의 입지까지도 위태롭게 한다.
(글 자체가 아니라 필자들을 선별하고 관리해야 하는 책임의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런 글 레디앙에서는 심심찮게 발견된다는 거다.
지금의 진보 운동이 진보하기 위해 취해야 할 것이 '연대'가 맞다면
물고 뜯기는 이런 싸움을 부추기는 글쓰기의 행태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하며
칼럼니스트와 당 매체의 반성이 필요하다.
열정과 진보는 휘발된 낚시의 미디어가 된다면
좋은 기사를 올려도 이미 읽어줄 독자들은 떠나고 난 후일 테니까.
이 글을 쓴 내가 남성이고, 혹은 어쩔 수 없는 마초라고 한다면
또 역시나 어쩔 수 없을 테니까.
어지럽게 더듬어오는 공격적 손가락들의 무심함
그 무심함의 반대편에서 버려지는 것들이 있어
내가 떠나온 게 아니야
나는 아.팠.어 네가 나를 아프게 했어
아팠다고 말하게 했어
어릴 때부터 나는 멍한 계집애였어
어릴 때부터...?
어찌할까 계속 피부가 건조해져 오네
발톱이 더 미워져버릴 것 같기도 해
고양이는 밥을 먹지 않고
그 사람도 밥을 먹으러 오지 않았어
아아 그놈의 밥!
내가 주워온 건 네가 아니었는데
내가 살고 싶어서 그랬어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같은 의미로 죽어주지 않는 기억에게
번뜩이는 칼을 들이대볼까
고통을 긍정하지는 않아 오해 말아
그러나 마지막까지 숨을 쉬게 하는 것들아
담배 연기 속의 엄마는
숲으로 가는 길만을 겨우 일러주고
고양이의 혓바닥은 자라나는
발톱하나 어찌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살려고 (마음 먹었어)
일상의 강물이 문득 범람해 눈 뜬 나를 깨워줄 때 까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애
꽃틀 안에서 아득한 엄마와
버려진 그 남자가 버리지 못하고
끝내 돌아와 불러볼
그 여자, 그리고 나
정혜




